우리 주변에 위로가 절실한 어른아이들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어른이라고 해도 마음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상처받은 아이가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내면이 성숙한 건 아니라는 얘기인데요. 연세가 80~90이 넘으신 할머니들 중 옛날 얘기를 하시는 분들 많이 계시죠. 특히, 당시 그 분들은 빠르면 10대 중반이나 후반에 결혼을 해서 시집살이 하신 분들이 많잖아요.
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해서 하신다는 건 그만큼 그 일로 쌓인 감정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일텐데요. 주변 사람들이 느끼기에 그 이야기가 듣기 지겹고 더 이상 듣기 싫은 사골 에피소드라고 할지라도 그 분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감정에 공감해줘야 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족이라면 더더욱이요. 같은 가족 내에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대물림 되어 후손에까지 카르마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에 집중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고요.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전화 통화하는 걸 듣게 되는데요. 저는 유독 하소연하는 대화에 귀가 쫑긋해지더라고요. 지난 번 지하철에서 듣게 된 통화 내용은 대강 이랬습니다. 사업을 하는 남편은 이미 외출한 상태였고 시간 맞춰서 아내와 함께 이사하는 집을 보러 가기로 약속이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대뜸 아내에게 전화로 갑자기 약속이 잡혔고 집 보러 가는 시간이 어중간하다고 했나봐요. 아내가 느끼기에 남편은 굳이 자기가 같이 가야 하는 거냐는 기색이 역력했었나봐요. 빈정 상한 아내가 그래도 같이 가보는 게 낫지 않겠냐며 남편을 설득해서 같이 갔습니다.
보통 이사 가기 전에 가구를 들이고 배치하려면 치수를 재야 하잖아요. 줄자를 잡아주고 대강 위치를 어느 정도 정하려면 같이 가서 확인하는 게 제일 좋긴 한데 그 전부터 이미 둘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있는 듯 했습니다. 남편이 사업을 하는데도 잘 되지 않아서인지 아내도 많이 지쳐있는 게 느껴졌어요. 아내가 자기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서 준 상황인데 남편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내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안타까웠고 제 마음까지도 무거워졌습니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오죽 답답하면 그렇게 전화로 하소연을 했을까 하는 아내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부부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상대방에 대한 실망은 물론 원망하는 마음이 싹틉니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 각자 자신의 답답함을 호소하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태도로 변하게 되는데요. 서로가 느낀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를 자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서로 감정에 대한 가감없는 소통 없이 관계 회복은 돌이킬 수 없기에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더라도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서 이전과 아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복되는 현실에서 깨닫는 게 없다면 우주는 문제의 원인을 마주하고 깨닫게 될 때까지 같은 경험을 선물로 안겨줍니다. 왜 선물이냐고요? 겉으로 보기에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라고 해도 그 고통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게 하는 기회를 마련해주거든요. 또 치유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태풍의 눈처럼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고통이라는 거친 풍파를 겪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는 위로일 것입니다. 거친 풍랑이 지나간 후의 바다는 수줍은 표정을 간직한 순진한 아이를 닮아 있듯이, 진심 어린 위로는 고통 받는 어른아이의 쓰라린 상처를 아물게 해주고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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