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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나와 타인,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 맺음

by 풍요로운 마음부자 202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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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_ 채사장 _ 웨일북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합니다. 저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타인과의 관계로 인한 문제를 고민하던 몇 해 전 접하게 된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보면 제목 만으로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겠구나 정도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와 세계와의 관계까지 확장시켜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관계에 서툰 사람들이 읽는다고 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철학적 고민을 쉽게 풀어낸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그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고백을 담고 있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텐데요. 저자 스스로 타인과의 관계와 세계와 맺는 관계가 서툴기에 그러한 문제로 오랜 기간 고민을 거듭해 오면서 나름 생각을 정리하고 그와 관련한 저자 개인의 경험에서 혹은 책에서 나름대로 깨달은 바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중에서 발췌]
 
“우리가 세계에 던져졌다고 할 때, 그 세계는 지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 던져졌다. 당신은 당신에게, 나는 나에게. 그래서 그것은 신비한 일이다. 왜 나는 당신이 아니라 나에게 던져졌고, 당신은 내가 아니라 당신에게 던져졌는가?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뜻과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의문으로 시작해서 의문으로 남을 것이고, 질문으로 시작해서 체념으로 끝날 것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 안에 던져진 이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삶 이면에 있는 거대한 서사구조를 상상할 것이다. 과학을 신뢰하는 사람 안에 던져진 이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지 못해 다만 우연이라 말하고 깊게 침묵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답도 나오지 않는 부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 안에 던져진 이는 그것 그대로 생각할 것이고, 불가지론자에 던져진 이도, 그것 그대로 생각할 것이며, 회의주의자에 던져진 이도, 합리주의자에 던져진 이도, 실용주의자에 던져진 이도 그 안에서 꼭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93p)
 
“나는 언제나 이렇게 생각해왔다. 밤이 되는 건 괜찮으나 날이 저무는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시간이 쓸쓸할까 걱정될 뿐이라고. 그런데 문득,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이리저리 들춰보다 말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날이 저무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을지 모른다. 노을이 지는 것도, 움켜쥐었던 강물이 손가락 사이를 힘없이 빠져나가는 것도, 정성과 집착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 바람에 야위어가는 것도,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하나둘 잃어가는 것도 생각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과정일지 모른다.” (211p)
 
“여행자. 그래서 이것이 모든 나라는 존재의 숙명인 것이다. 여기에 이유나 목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이 지루하고도 긴 무한이라는 시간 동안 이 우주에서 저 우주로 눈뜨고 휘둘리며 여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250p)
 
세상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이 평생 동안 그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기도 사실 힘들겠죠.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를 꼽으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로 ‘관찰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종교의 본질이 믿음이라면, 나는 타인에 대한 종교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존재하길 바란다. 내 눈앞에 드러나는 육체라는 껍질을 넘어 저 외부에 당신의 의식이, 세계의 또 다른 관찰자가 실재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소통이라는 것이 슬프게도 수화를 모르는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수화 같고 작은 바늘구멍을 통해 오고가는 외침 같을지 모르지만, 나의 언어가 정제되고 다듬어져서 당신에게 전해진다면 내가 느끼는 감정의 미묘함을 당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28p)

 
저자 채사장이 쓴 책은 쉽게 풀어서 쓰는 편이라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지 않고 오히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데 매우 탁월합니다.
 
채사장은 문학을 비롯해 철학, 종교, 역사, 예술 등 웬만한 인문학 도서들을 탐닉한 사람이기에 읽는 내내 저자에 대한 경외감이 떠나질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인문학적 내공이 녹아든 책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관계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해 본 저자의 사적인 기록이 개인만의 문제로만 치부되지 않고 쉽게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인간이라면 관계 자체가 주는 피로도가 상당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와 타인,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치열한 고민 끝에 다다른 저자가 찾아낸 답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저자가 다다른 답에 수긍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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