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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_82년생 김지영

by 풍요로운 마음부자 202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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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_  조남주 _ 민음사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여성들 중에서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육아맘이라면 공감할만한 소설.  조남주 작가가 쓴 82년생 김지영입니다. 지난 해에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하기도 했죠. 
 
몇 해 전만해도 온라인상에서 급속도로 퍼진 유행어 중 ‘맘충’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영어와 한자를 합성한 단어로,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은 제 아이만 싸고도는 일부 몰상식한 엄마를 가리키는 용어인데요.
 
가령,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카페 테이블에 아기가 싼 똥 기저귀를 그대로 탁자 위에 올려놓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는 식의 경험담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 맘충’이라는 단어가 소수에 해당하는 이들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인해 육아하는 대다수의 엄마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으로 간주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육아가 마치 여성의 일인 것처럼 인식되게 함으로써 성차별적 시선을 고착화하는데도 일조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입니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는 통에 시댁 식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가 하면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하는데요.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 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 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이 소설은 김지영이라는 인물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고백으로 전개되며 그녀의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 자료와 기사들이 또 다른 축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1982년생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들을 대변하는 그녀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매우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권이 아무리 신장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남성 중심 사회의 변두리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하나의 족쇄로 또 평생의 굴레가 되어 얽어매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경험과 자료로 구성된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소설이면서, 어쩌면 여성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혼자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하는 폭력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낸 소설이기도 합니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 왔던 부당한 일들'이 있을때마다 김지영 씨가 택한 방법은 어땠을까요.

 




 
[‘82년생 김지영’중에서 발췌]

선배는 평소와 똑같이 다정하고 차분히 물었다. 껌이 무슨 잠을 자겠어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김지영 씨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94쪽)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100~101쪽)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116쪽)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오히려 그 순간들이었다. 김지영 씨는 충분히 건강하다고, 약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가족 계획은 처음 보는 친척들이 아니라 남편과 둘이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133~134쪽)
 
이 소설은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고서 형식으로 쓰인 소설의 에피소드들은 무척이나 사실적입니다. 우리 사회가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무감각한 것인지, 그 단면을 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주변에 남성을 기준으로 하여 여성을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죠. 엄마를 비롯하여, 누나, 여동생, 딸 등. 그렇기에 먼 나라, 다른 나라 얘기가 아닌 바로 우리 주변의 이야기, 내 가족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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