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_ 헤르만 헤세 / 이순학 역 _ 더스토리
‘데미안’을 처음 읽은 건 중학교 때였습니다. 헤르만 헤세라고 하면 너무도 유명한 작가이고 그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하니 으레 읽어야만 하는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읽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사춘기 때 자아 성장을 다룬 다양한 책들―좁은 문,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수레바퀴 아래서 등―을 접했던 시기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래도 읽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고 봅니다.
내용은 헤르만 헤세의 자서전적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책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고 합니다. 해리포터 작가로 유명한 J.K. 롤링이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으로 쿠쿠스 콜링_The Cuckoo's Calling이라는 추리소설을 출간한 것처럼 헤르만 헤세 또한 그 자신을 새로운 자아를 앞세워 시험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2~3년 전에 교보문고에서 패브릭 양장으로 된 데미안 초판본을 판매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기념으로 사서 다시 읽어 봤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의미하는 바가 꽤 명확합니다. 선과 악,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싱클레어는 ‘악’이라고는 접하기 힘든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악’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데미안이 또 악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프란츠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싱클레어를 도와주는 천사 같은 존재로 느껴졌거든요. 저는 소설 속 관찰자로서의 ‘나’라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나와 다른 존재, 즉 타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봄으로써 진정한 나를 알아내도록 자극하는 존재라고 느꼈습니다. 거울 속에 비춰진 또 다른 나, 혹은 내면 속에 선과 악이 있다면 선은 싱클레어, 악은 데미안으로 대비될 수 있겠네요.
이 소설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이야기한다는 건 아마도 이 부분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 중에서
제가 이 책을 이해한 바를 짧게 요약하자면 이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선과 악으로 이루어진 분리된 세계를 알로 표현했고, 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 즉 탄생은 곧 내면에 자리한 선과 악 모두 자신의 서로 다른 면임을 깨닫고 그 틀을 깨닫는 순간이 진정으로 자아가 성장하는 시점이죠.
우리 내면에는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고난 본성 자체의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착한 사람도 얼마든지 나쁜 짓과 못된 짓을 할 수 있으니까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죠. 또한,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사람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예수나 부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빛도 어둠이 존재하기에 밝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선이 무조건 옳고 악이 무조건 나쁘다고 한다면 이분법적 세계관에 여전히 빠져 있다는 거겠죠. 악한 면을 인정하고 수용하여 빛으로 통합할 때 빛은 더욱 더 밝은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내면의 성장은 우리 내면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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