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서 자신이 지은 잘못된 행동을 이번 생에서 스스로 균형잡으려고 계획해 둔 일들이 때로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또 때로는 육체적인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고통을 겪어내는 시간 동안에는 알지 못합니다. 이번 생을 계획한 당사자가 바로 본인임에도 말이죠. 우리가 다양한 감정까지 소화해내다 보니 고통의 소용돌이는 가끔 겉잡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다양한 고통을 몸소 겪어냄으로써 자신의 어긋난 행동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이들을 우리는 매일 마주합니다. TV에서, 길거리에서, 혹은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 말이죠.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 어릴 적 소아마비를 겪은 후 몸이 불편해진 사람, 살면서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사람 등 그 사례는 무척 다양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불쌍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에도 직접 방문한 적이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의 닉 부이치치. 그는 이름도 어려운 '해표지증'이라는 유전질환으로 짧은 왼쪽 발을 제외하고는 양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를 보면서 그저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진 않습니다. 물론 처음 그를 TV에서 보았을 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참 안 됐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삶을 짧은 영상으로 보면서 사지 멀쩡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을까 참 놀라웠습니다.
목사로 또 동기부여 연설가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요. 예전에 힐링캠프에 출연하여 양치질, 머리빗질, 옷입기 등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당시엔 저도 참 대단하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마음공부를 해오며 다양한 영성 관련 책을 읽어오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세상엔 불쌍한 영혼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통이라고 보이는 것조차 영적인 시각으로 보면 고통이 아닌 성장을 위한 과정일 뿐이니까요.
이후 다시 닉 부이치치를 봤을 때는 그를 보는 시각이 완전 달라진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삶을 계획한 진정 용감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를 보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지장보살이 떠올랐습니다. 지장보살은 이미 성불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구제할 목적으로 자진하여 이승에 남아 있는 존재로 알려져 있는데요. 저에게는 그가 곧 지장보살로 보였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우리는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으므로 다른 누군가에게 기댈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이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시나요? 그는 직접 체험하고 깨달은 바를 전달하기에 그가 하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진심은 우주를 감동시키고도 남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해 준 말들을 듣다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이 '포기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과 그가 '포기하지 마'라고 하는 말은 파장부터가 다릅니다.
포기하지 말고, 여러분을 믿어주고 여러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있음을 알아 달라고 당부하는 그의 말에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낍니다.
불쌍하다는 마음이 생겨났다고 해서 불쑥 도움을 주려고 하지 마세요. 그 사람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셈이니까요. 지켜보되 도움을 요청하면 그 때 도와줘도 늦지 않습니다.
세상에 불쌍한 영혼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존경해야 할 용감한 영혼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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