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날이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듯해요. 이제 정말 푹푹 찌는 여름이 시작되려나 봅니다. 초여름은 어버이 날 즈음해서 시작되는 듯해요. 어버이 날, 부모님께 문자를 보내드렸어요. 짧으면서도 수줍은 사랑고백으로요.
‘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사세요. 사랑해요!’
바로 그 다음 날, 부모님께서 시골에서 올라오셨어요. 아빠는 항상 엄마를 핑계 삼아 말씀하시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당신 치아가 불편해서 치과 치료를 받으려고 서울까지 오셨음에도 우리가 직장 다니랴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까봐 엄마가 걱정이 많다며 바쁜 일 끝내고 서둘러 올라왔다고 둘러대셨죠.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아빠를 큰아버지댁에 맡겨놓고 나몰라라 하셨는데, 어릴 적부터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아빠는 늘 정서적 허기에 시달리셨고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크고 작은 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셨어요. 감기는 일년 내내 달고 사시고 겉으로는 먹는 약이 많아 신물이 난다고 하시지만 사실 정반대로 약 드시는 걸 좋아하신다는 걸 다 알고 있답니다.
조금만 불편해도 아프다고 병원에 가봤으면 하는 아빠. 가족들이 주는 사랑과 관심은 태부족하고, 그래서 아빠는 아프다며 계속해서 각종 엑스레이 촬영은 물론 전신 CT검사까지 받아야 마음이 놓이시나 봐요. 우리가 버는 돈은 고스란히 병원 검사비로 들어가는 걸 아시면서도 곧 잊어버리시네요. 지금껏 자식들의 관심으로도 모자란 탓인지 거짓말이 계속 심해지고 있어요.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가 봐요. 내면의 사랑이 가득 차 흘러 넘쳐야 풍요로워질텐데 우리 가족은 그러기엔 아직 갈 길이 멀어보여 씁쓸해지네요.
엄마 핑계로 둘러대셨지만, 저는 그 속내가 빤히 보였어요. 이번에 올라오신 이유도 서울에서는 병원과 약국이 널렸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병원 나들이를 시작하시려나보다 생각했는데요. 아니나다를까 피부과와 내과를 기다렸다는 듯 다녀오셨더라고요. 어찌됐건 이번에 올라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어 저는 한편으로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나와서 살아서 늘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집에서 통학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이 부러웠거든요. 어른이 되었어도 메워지지 않았던 구멍이 요즘 들어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아빠한테도 감사한 마음이 커요.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고나서부터 화병이 생겨 불면증으로 고생하시면서도 아빠가 불쌍하지 않냐며 말씀하시네요. 그래서 여쭤봤어요. “엄마는 아빠를 용서했어?” 얼버무리며 넘어가는 엄마를 보며 저는 씁쓸한 마음이 들면서도 제가 간섭할 처지는 아니니 어쩌겠어요. 본인이 계획하고 온 삶인데 제가 참견할 바는 아니니까요.
몸이 아프면 가장 불편한 사람은 바로 본인이기에 그걸 몰라주는 저도 정말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은데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빠이지만, 아빠가 이따금씩 보여주는 사랑은 투박하지만 알고보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답니다. 여든이 넘으신 아빠, 가끔씩 아빠의 눈을 들여다보면 상처받은 어린 아이가 울부짖고 있는 게 보여서 울컥해지네요. 불현듯 요즘 함께 지내는 이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어요. 지나고나면 어느 새 훌쩍 지나가 버린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드니까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순간에 온 마음 다해서 충실해지려고 해요.
부모님께서 병들고 아픈 건 자식들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양애란 자모님의 말씀처럼, 지금은 재고 따질 때가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물 차기를 바라지말고 그저 사랑과 관심과 애정을 쏟아 붓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아빠에게서 더 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다니, 아...... 정말 감사해요. 우리를 더 큰 사랑으로 안내하려고 악역을 자처한 아빠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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