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리뷰

세상에는 또 하나의 ‘나’가 무수히 많다

by 풍요로운 마음부자 2020. 12. 1.
반응형

 

 

 

 

또 하나의 나를 보자 _ 양애란 구술 / 박광수 엮음 _ 정신세계사

 

 

 

여기 타인을 온전히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애란 자모님인데요. 아마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녀가 열세 살이 되던 해부터 밥을 먹기가 어려워지다가 결국 음식물은커녕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게 됩니다.

 

먹는 문제와 더불어 잠 한숨 못 자고 앉은 채로 1년 넘게 지내면서 그녀는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을 겪어냅니다. 지금은 물로 목을 축이는 정도라고 하니 인간이 반드시 먹어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양애란 자모님께서 입증하신 셈입니다.

 

그녀가 겪은 고통은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몸은 마치 달궈진 쇳덩이처럼 뜨거워져 몸속 장기가 다 타서 재가 되어 내려앉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그녀의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명료했다고 합니다. 다만, 옆에서 지켜보는 식구들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갈 뿐이었습니다. 훗날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이 기이한 경험을 술회하면서 당시 무아(無我)의 상태였음을 밝힙니다.

 

그녀가 열아홉 살 때 횡단 보도를 건너다 사고를 당해 쓰러지며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경험을 통해 영혼의 존재와 윤회가 우주의 질서임을 알게 됩니다.

 

혀가 빠져 나와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천수경이 입에서 줄줄 흘러나온 일, 단전호흡을 처음 배우는데도 한 호흡이 일 분을 훨씬 넘긴 일 등 그녀가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듣노라면 그녀는 이곳 3차원 세상에서 일반인이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이미 넘어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모든 이의 에미로, 고통받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아 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자모)’로 세상에 나옵니다.

 

 

“신의 작품 중에서 최고의 걸작은 에미입니다. 신은 인간에게 복도 주고 벌도 주지만 에미는 자식의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고 자식의 잘못을 모두 끌어안습니다. 거기엔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무조건입니다. 그것이 에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 에미 노릇을 제대로 하질 못합니다. 그래서 하늘은 저한테 그 에미 노릇을 하라는 특별한 사명을 주어 이 몸에 사랑과 자비를 넣어주셨습니다. 자식들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내 가슴에 담고 에미의 사랑을 그들에게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자식을 품안에 끌어안는 일입니다.”

p.82

 

 

그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대신 행복과 평안을 얻었으며 심지어 병고를 당하는 사람들은 완치라는 기적을 보기도 합니다.

 

“사람 팔자 시간문제이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마음 한 번 바꾸면 그것이 곧 치유요, 해방이요,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지 않아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은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습니다. 내 도움은 사실은 필요가 없습니다. 본래 병이란 없는 것이기에 자기 스스로 그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병은 낫게 되어 있습니다.”

p.164-165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평생을 겸허한 자세로 초연한 삶을 살아 온 양애란 자모님. 이 책 제목처럼 그녀가 펼친 계몽운동이 있는데 그게 바로 ‘또나보’ 운동입니다. ‘또 하나의 나를 보는 눈을 뜨자’인데, 우리 가족은 물론 친구, 직장동료, 나아가 타인들, 그리고 생물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나의 또 다른 분신으로 보고 느끼고 자비로운 마음과 연민을 갖자는 의미입니다.

 

 

“세상에는 또 하나의 양애란이가 무수히 많습니다. 저는 이 몸뚱이 하나가 큰 맷돌에 갈려서 고운 분가루가 되어 온 산하를 뒤덮어도 좋습니다. 그것으로 또 하나의 양애란이가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몸이 하루에 몇천 번을 맷돌에 갈려도 갈린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겠습니다. 왜 힘들다는 생각이 들겠습니까. 그저 좋고 좋을 뿐이지요.”

p.171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을 조건 없는 사랑으로 대한다면 그게 바로 깨달음의 경지이자 그러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이 예수고 부처가 아닐까요. 

 

저는 오늘도 무수히 많은 또 다른 나를 만납니다. 

 

 

 

반응형

댓글